제주도는 삼다의 섬이라고 하죠. 돌, 바람, 여자가 많은 섬.
화산분출로 생긴 검은 곰보돌 위에 사람이 살고 숲이 삽니다. 약 180만 년 전, 첫 번째 화산 활동을 통해 제주의 바닥을 이루는 현무암이 바닷속에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다섯 번의 화산 분출로 제주의 지형과 해안선, 한라산과 수많은 오름이 만들어졌습니다. 섬 전체가 화산암으로 덮였으니 돌이 많을 수밖에 없고, 바람 많은 섬에서 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그 돌을 쌓아 바람을 막았습니다.
오늘은 제주도의 돌담에 대한 얘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아래 자료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펴내는 계간지 <2024 가을호>에서 -제주돌담- (글:김유정 제주문화연구소장)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제주는 돌과 바람의 섬
화산활동을 통해 바닷속에서 불쑥 튀어 오른 거대한 땅덩어리인 제주는 태생적으로 돌이 많다. 사람이 쌓아 올렸기에 인공물이지만 돌담 자체로 제주 자연의 한 축을 담당한다. 삶의 방해물이 어느새 삶을 보호하고 경계를 알리는 표식이 되었으니, 제주에서의 돌의 역할이 크다. 모양도 형태도 제각각인 돌담도 알고 보면 그 목적과 필요성에 따라 다르고 저마다의 이름이 있다. 해안에서부터 마을로 이어지고 들판과 오름 곳곳에 무심하게 쌓아둔 돌무더기부터 돌과 돌이 벽을 이루어 수 백, 수 천 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성을 이루기도 한다.
저마다의 이름으로 불리며 제주 땅을 지켜내고 있는 돌담을 들여다본다.
1. 사람의 공간을 위한 집담과 올레담
제주의 전통적 살림집은 여타 지역처럼 흙이나 시멘트, 콘크리트만으로는 세찬 바람을 이겨낼 수 없다. 돌로 외벽을 세워 내부에 짚이 섞인 찰흙을 발라 구멍을 막아 올린다. 집 마당의 작은 텃밭인 우영팟에도 돌담을 세우고, 거주 공간의 표식을 위해 처마 끝과 위치를 맞춘 담을 쌓는다. 사람이 모여 촌락을 이루고 집집마다 돌담을 쌓아 올리니 집담이 곧 골목을 뜻하는 올레담이 된다. 올레담은 바람이 바로 잡으로 들이치는 것을 막는 방풍의 효과와 볕이 드는 남쪽은 낮게, 바람이 세찬 북쪽은 높게 쌓아 골목을 완성하고 마을의 형태를 이룬다. 올레담에는 집 대문에 해당하는 올레목이 있다. 여기에 정주석을 세워 구멍을 뚫고 긴 나무막대인 '정낭'을 걸쳐놓아 마·소의 출입을 막았다.
2. 농경을 위한 밭담
제주 돌담의 대표는 역시 밭담이다. 돌이 많은 화산토는 농경의 관점에서는 어려운 조건이다. 농사를 지을 땅을 위해선 암반을 걷어내야 하고, 방목해 키우는 가축들의 경작지 침범을 막아야 했다. 걷어낸 돌을 쌓아 올린 것을 잣백, 머들(머들돌)이라고 하는데 이는 밭담을 쌓는 재료가 된다. 척박한 땅을 개간해 경작을 하는 만큼 제주의 밭은 비정형적이고 그래서 제주 받담이 구불구불한 형태를 띤다. 특히 밭담은 소유권의 표식이기도 한데, 제주 특유의 곱가름(소유 경계선) 문화가 담겨 있다. 밭과 밭 사이에 경사가 심한 곳에는 축담을 쌓아 각 공간을 보호하고 경작 중에 나오는 자갈을 모아둔 돌무더기 잣백담도 밭담의 일부다.
2007년 농림부에서 문화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측정한 제주 밭담 길이는 22,108km(추정).
제주 밭담은 2013년 세계농업유산에 등재되었고, 2014년에는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이름을 올렸다.
3. 목축을 위한 잣담·캣담
잣성(잣담)은 말을 키우기 위해 경계를 지은 돌담으로 한라산을 중심으로 산간 지역을 상잣성, 중산간을 중잣성, 마을 뒷산을 하잣성으로 돌담을 쌓아 구분했다.
15세기 제주 출신 관리인 고득종에 의해 한라산에 목장을 만들어 방목하고 목장의 테두리를 쌓아 올린 것이 시초다. 이후 마을 공동 목장 내 마소와 그의 먹이가 될 목초를 관리하기 위해 가름한 캣담도 있다.
또한, 보리를 벤 다음 농사를 한 철 쉬고 거름 대신으로 밤마다 마소 떼를 가두어두는 바랑밧담(바령팟담), 재래식 돼지우리인 통싯담도 있다.
4. 제주 해양 돌문화를 대표하는 원담
제주 사람들은 반농반어로 먹거리를 확보했는데 특별한 기술을 쓰지 않고도 식량을 조달할 수 있도록 마을 공동어장을 마련했다. 이는 억센 바다 지형 때문에 조업이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바다에 돌담을 쌓았는데 밀물 때 고기가 들어오게 하고 썰물 때 가둔 고기를 잡는 돌그물이 있는 바다밭이 된다.
원담의 형태는 바다 방향은 완만하게 만들고 마을 방향은 수직으로 만든다. 원담에는 주로 멜(멸치)이 들어왔고, 그 뒤로 갈치나 작은 고등어, 각재기(전갱이)가 채워져 마을 사람들 식탁에 오르고, 어린이들의 물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해안가 주변 돌문화가 마을 공동체와 연결되는 건 원담뿐 아니라 해녀들의 쉼터가 되는 불턱도 마찬가지다. 생수로 쓰이는 용천수를 담아두는 산물통도 돌을 쌓아 올려 관리했다.
5. 망자를 위한 산담
제주의 낯선 풍경 중에 논밭에 무심히 자리 잡은 무덤이 있다. 육지에서는 주로 산이나 특정한 장소에 모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제주의 경우 경작지 중심이나 밭머리, 오름에서 쉽게 마주한다. 제주에서는 무덤을 '산'이라고 부른다. 이 무덤을 아우르는 돌담인 산담은 마소의 침입을 막고 영혼의 집을 완성한다. 산담에는 영혼을 위한 출입문인 '신문'을 두었고, 산담 안 무덤 양쪽엔 동자석이나 비석을 두어 영혼을 지켰다. 아마도 산담의 첫자리는 들판이었겠지만 점차 경작지로 개간되면서 밭 안으로 수렴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제주의 산과 들, 밭에 산재한 무덤이 표식이자 고된 밭일의 휴식터로 이용되기도 한다.
6. 방어와 보호를 위한 포굿담, 읍성, 환해장성
거친 파도로부터 배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포구에 담을 쌓은 포굿담, 관아와 그 주변을 보호하기 위해 둘러싸던 읍성, 제주도 해안선 300여 리 (약 120km)에 쌓은 환해장성(석성)도 돌로 쌓았다.
제주밭담 축제(밭담길 트레킹)
FAO(유엔식량농업기구)의 세계중요농업유산인 제주밭담길을 걸어보고 체험해 보는 제8회 제주밭담축제가 월정리 제주밭담 테마공원에서 11월 2일~3일 열렸다.
올해는 세계중요농업유산 10주년을 맞이하여 "빛나는 제주밭담, 그 가치를 알리다"라는 슬로건으로 8개 제주밭담 마을들이 모두 참여하며 기념 콘서트(가수 이솔로몬)를 비롯하여 다양한 공연, 체험, 전시 프로그램이 열렸다.
제주밭담길은 시커먼 밭담을 모두 이으면 약 2만 2천 km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 6개의 코스가 정비되어 제주의 자연과 벗 삼아 함께 걷고, 느끼며, 체험할 수 있도록 밭담길을 조성하였다.
제주 돌담의 보존
이상, 제주의 돌담의 여러 이름과 활용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제주 돌담의 시작은 제주의 거친 자연환경으로부터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주 돌담은 그 어떠한 접착제 없이 그저 돌을 쌓습니다. 현무암 자체에도 구멍이 나 있지만, 제주 돌담은 바람길을 위해 돌과 돌 사이에 틈새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주 돌담은 거센 바람이 불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주도 내 개발바람이 불면서 돌담의 훼손에 가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밭담을 가져가서 집담으로 쓴다든지 육지로 무단 반출하기도 하는데 지금은 자기 밭담이더라도 허가 없이 옮기면 벌금을 문다고 합니다.
구불구불 마치 춤추듯이 얽혀 있는 밭담이나 바닷가의 거센 바람을 막기 위한 올레담의 존속 이유가 무시된다면 더 이상 제주의 대표 문화인 돌담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너무 흔해 제주 제일의 존재를 소홀히 여기고 복원이나 보전의 목소리를 무시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제주 돌담의 이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제주에 오시면 제주돌담을 흔하게 보실텐데요, 그 돌담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그럼, 그 돌담이 비로소 제주의 오래된 유산으로 자리매김될 거에요.
제주도 돌멩이는 기념품으로 가져가지 마세요
제주도는 2012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조성 특별법'과 관련 조례에 근거해 직선 길이 10cm 이상의 자연상태의 돌을 제주 보존자원으로 지정해 도외 무단 반출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자연석 이외에도 화산분출물(화산송이, 용암구, 용암석순 등), 퇴적암(점토, 모래, 자갈로 이뤄진 암석), 응회암(화산재, 화산모래, 화산자갈로 이뤄진 퇴적층), 패사(조개껍질을 많이 포함한 모래), 검은 모래(검은색 띤 모래)도 포함된다.
허가 없이 다른 지방으로 반출하려다 적발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제주 관광객들이 해안가의 작은 돌멩이를 제주여행 기념으로 가져가려다 공항에서 낭패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공항공사는 제주도의 요구로 수하물에 돌멩이와 모래 등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현무암 등에 야생화나 풍란을 가꾸는 '석부작'은 자연석 크기가 50cm 이하이면 허가 없이 반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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