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배가 있는 분들은 '이삭 줍기'라면 보리이삭이나 벼이삭 줍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분도 계시겠네요. 말 그대로 추수 끝난 밭이나 논바닥에 떨어진 이삭을 주우러 다니던 시절, 80년대까지도 이삭 줍기로 배고픔을 달래던 가난한 소작인이나 날품팔이가 많았으니까요. 가난한 이들을 위해 부자들이 싹싹 긁어가지 않고 일부러 남겼다는 얘기도 전해오죠. 이삭 줍기는 일반적인 것이고 우리의 풍습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삭 줍기와는 다른 형태지만 지금으로 치면 진짜 '절도'였던 '서리'도 어느 정도는 웃고 넘기던 시절이었죠. 모두 '우리 애들 입'으로 들어가는 거였으니까요.
지금은 벼, 보리는 이삭 줍기 할 수 없는 시대가 됐더군요. 콤바인으로 알맹이까지 포장하는 시대라 이삭 줍기도 안 되지만 주울 사람도 없죠.
지금은 옛날 추억이 그리워서, 또는 버려지는 농작물이 아까워서 주워오는 노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농민들이 항의하듯 작정하고 야밤에 차량에 싣고 가는 그런 행태는 당연히 이삭 줍기가 아니죠. 그런데 단 하나라도 남의 밭에 들어가 버려진 농작물 들고 나오면, 범죄랍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삭 줍기가 범죄라고요?
이삭 줍기 : 작물, 채소, 과실 등을 거둔 뒤에 남은 것을 줍는 것
시골에 살면 농작물 이삭 줍는 재미가 쏠쏠하죠. 동네 주변을 산책하다가 못생긴 무 몇 개, 미처 못 캔 감자 몇 알, 두 쪽난 양파 몇 개, 고구마 줄기에 달린 작은 고구마, 북돋은 가장자리에 미처 발견 못한 큰 고구마... 큰 횡재한 듯 기분 좋아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랑하며 손에 달랑달랑 들고 가는 풍경을 이제 볼 수가 없다니 너무 아쉽습니다. 야채 가게에서 사면 얼마 안 되는 가격이지만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시골살이의 낭만이랄까요, 프리미엄이랄까요. 도시 지인들에게 자랑하곤 했죠.
그런데 이제 범죄자로 몰릴 수 있다니 깜짝 놀라 포스팅해 봅니다.
이삭 줍기는 시골살이 덤!
제주 동부지역에는 겨울철에 접어들면 당근을 수확하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당근밭은 대부분 상인이 사서 수확하고 수확 후 며칠이면 당근밭을 갈아엎습니다. 다음 작물을 준비하는 거죠.
어떤 밭은 수확 후 오랫동안 방치하여 남겨진 당근들이 말라비틀어져 늘어져 있는 것을 보면 아까워서 몇 개 주워 쓱쓱 닦아 그냥 우걱우걱 먹기도 했습니다. 자연 건조된 거라 맛이 달거든요.
애써 농사지은 것 누구 입에라도 들어가면 좋을 텐데... 먹는 데는 지장 없는 당근이 버려져 있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누구든 먹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어 올해도 당근 주우러 갈 생각으로 동부 쪽에 갈 기회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버려진 당근을 주워서 이웃과 나눠먹기도 하고 말려먹기도 하면서 상품가치가 없는 것이지만 먹는 데는 아무 문제없는 작물을 잘 이용하여 맛있게 먹으니 그저 농부에게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사실, 당근은 저에겐 없으면 안 먹고 있으면 먹는 부재료에 지나지 않는 야채라 일부러 갈 것까지는 없고 언제 동쪽 갈 기회가 생기면 눈여겨봐야지 하는 정도입니다.
제주에 흔한 무밭, 드넓은 무밭에 버려진 무를 보면 농사짓는 저로서는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농부 마음이 오죽할까 제 일처럼 마음이 심란해지기도 합니다.
생산가격보다 수확 가격이 낮아 버려지거나, 상인이 이미 입도선매했지만 시장 가격이 안 맞아 포기한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수확할 수 없어 그대로 갈아버린 무밭을 보면 농부든 상인이든 얼마나 속상할까, 밭에 나뒹구는 무 한두 개 집어오기도 했습니다.
제주엔 감자밭도 많죠. 동네에서 상인이 실어내 간 것 확인하고 감자밭에 들어가 욕심껏 주워오기도 했습니다.
마늘밭은 안 갑니다. 아무래도 마늘은 가격이 높고 꼼꼼히 수확하기 때문에 이삭주울 게 거의 없거든요.
전 주인 허락받고 타작 끝난 콩밭에서 서리태도 주워왔고, 더덕 수확 후의 밭에서 더덕을 귤 컨테나로 캐오기도 했습니다.
주인들은 어차피 놔두면 썩을 것, 내가 애써 농사 지은 것 누구라도 가져가 먹으면 좋지 않겠냐고 하며 멀리 사는 저를 일부러 부르기도 했죠.
그런데 얼마 전 이런 펼침막이 제주 도로변에 펼쳐져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삭 줍기가 범죄라고? 왜? 경찰청에서 내건 거니 빈말은 아닐 테고요.
남의 밭에 들어가 남은 농산물을 가져오는 행위도 엄연히 절도이다
적발 시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삭 줍기가 절도?
뉴스에 났다면서 지인이 들려준 말.
제주당근 이삭 줍기한 것을 '못난이 당근' 상품으로 파는 행태가 있었답니다. 이건 너무한 것 같고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농부들은 상인에게 밭 통째로 팔아넘겼으니 '내 밭이지만 내 당근'이라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가족이 먹을 양보다 많이 주워와 그걸 다 먹지 못하니 팔았을 수도 있겠고, 작정하고 주워와 못난이당근으로 팔았을 수도 있는데 어느 경우든 꼭 나쁘게만 몰아갈 것도 아니지 싶습니다.
어차피 수확 끝난 그 밭에 있는 것들은 썩어 버릴 거니까요. 주인이 남겨진 당근을 주우려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가져가버렸으면 얘기가 달라지겠네요.
내 밭에 남이 들어가는 걸 막으시는 분들은 밭 출입구에 줄을 쳐 놓으시더군요. 줄을 쳤거나 경고문을 게시했는데도 들어갔다면 그건 범죄로 봐도 되겠지만요.
이삭줍기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는 10년 전에 이미 들었습니다.
제주 토박이 삼촌이 남의 밭의 것 아예 쳐다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시면서, 특히 줄 처진 밭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얘기도 하셨습니다. 양파 몇 개 주웠는데 터무니없이 배상하라는 밭주인이 있었다며 농작물 이삭 줍기 몇 개 했다가 밭주인에게 덤터기 쓸 수도 있다며 이제 이삭 줍기를 허용할 만큼의 농경사회가 아니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분별한 도시민의 이삭 줍기가 일으킨 문제
'이삭 줍기 범죄'를 검색해 보니 전국적으로 이삭 줍기가 성행한가 봅니다. 그로 인한 마찰과 분쟁도 많고요. 그만큼 도시민들이 차를 이용해서 '절도'에 가까운 행각을 벌이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창녕의 경우는 농민들이 양파와 마늘을 수확하고 있는 와중에 한쪽에서 이삭 줍기를 했다니 그건 너무 했습니다. 야밤에 차량을 대고 조직적으로 주워가기도 한다니 농민 입장에선 분통 터질 만도 하겠습니다.
농산물 가격이 떨어진 해는 한숨만 나오는데 한쪽에서 열심히 줍고 있으니 꼴 보기 싫을 테고, 가격 높은 해는 하품이라도 수확해야 하는데 이삭이라며 달려드니 얼마나 짜증 날까요?
요즘은 젊은 노인들이 많아 온통 이런 데에 정보통이 되어 자가용 끌고 다니며 전문적으로 이삭 줍기 하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겠죠. 이제 이삭 줍기가 범죄라고 전국 경찰청에서 계도한다고 하니 조심들 하겠죠.
농민과 도시민의 위화감
기사를 보니 농민들은 "밭에 들어와 땅을 헤집어 농산물 캐 가고 비닐 훼손한다"라고 호소하는데 제가 모르는 고충이 있나 봅니다만, 땅을 헤집는 것이 왜 나쁠까, 다음 농사를 지으려면 땅을 뒤집어야 할 텐데...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갔으면 몰라도 바닥의 비닐은 일회용으로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걸 헤집는다고 문제 될 것은 뭐지?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삭 줍기가 실제적인 폐해가 아니라 농민들의 감정적인 문제 아닐까 조심스럽게 유추해 봅니다만 남의 얘기니까 저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겠죠.
"남은 뼈 빠지게 농사짓는데 저것들은 거저 가져가 먹는다"
거칠게 말하면 이렇게 표현해도 될까요?
저도 적지만 작물을 길러봤고 지금은 귤농사를 짓고 있어서 농부 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만 버려진 농산물을 더 이상 돌아보지 않을 거면 누가 주워가든 썩어가든 상관없을 것 같은데요. 오히려 내가 힘들게 농사지은 것 썩는 것보다 누가 먹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10여 년 전 제주귤 수확시기에 비가 많이 내려 귤들이 낙과해서 온 밭이 황금빛으로 노랗게 덮인 적이 있었습니다. 떨어진 귤은 상품으로 팔 수 없어 썩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데, 제 생각에 제주 관광객들이 떨어진 귤을 주워가면 어떨까. 이미 맛이 충분히 들었던 귤이라 올해는 마음대로 주워가고 다음 해에 귤 한 박스를 사 주면 서로가 좋을 텐데... 그런 생각도 했더랬습니다. 포장비와 택배비가 만만치 않아 육지 지인들에게 거저 보내주기에도 망설여지는 농부 입장에선 그래도 누군가 주워가 맛있게 먹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한편으로 농민들이 이렇게 절박할 때 도시민들이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
농산물을 항상 싸게만 먹으려는 도시민들이 서운하기도 하고 얄밉다는 생각이 저 역시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농민들의 수입보장이 우선되어야
'이삭 줍기는 절도'라는 당혹스러운 계도문을 보면서 법조문을 따지기 이전에, 이런 사태까지 오게 된 근본 원인이 저는 농민들의 한 해 농사 수입이 너무 적은 데에 있다고 봅니다. 농사라는 게 수입 보장이 안 되는데, 풍년 들면 농산물 가격 하락, 흉작으로 가격 오를 것 같으면 정부에서 수입해 버리니 농사로는 수입을 예측할 수 없게 된 구조에 있다고 봅니다.
농민들이 안정적인 수입을 거둘 수만 있다면 이렇게까지 야박하게 이삭 줍기를 강력하게 처벌할 것을 요구할까요.
**제가 전국의 현장 사정을 잘 모르고, 거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압니다만 우리 농민들도, 도시민들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당치도 않은 긴 얘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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